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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의는 너무 늦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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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10 14:45
 
〔국장 칼럼〕
 

교통사고는 한순간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삶은 그 순간에서 멈춘다. 응급실에서 시작된 시간은 장례로 끝나지 않는다. 남겨진 가족의 생계와 간병, 정신적 고통, 그리고 책임을 가리는 사법절차까지 이어져야 비로소 피해 회복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그래서 형사사법 절차는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피해자의 일상을 회복시키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최소한의 책무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경남 의령에서 발생한 현직 경찰 간부의 로드자전거 사망사고는 이러한 형사사법 절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경찰은 전문기관의 사고 분석과 현장조사, 피의자 조사 등을 종합해 전방주시 소홀과 제동장치 조작 미숙 등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검찰은 보완수사를 거쳐 사건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사고 발생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형사재판은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검찰은 모든 사건을 객관적인 증거와 법리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해서 반드시 기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인 사실관계와 책임은 법원이 판단하는 것이 형사사법의 원칙이다. 누구에게나 무죄추정의 원칙은 보장돼야 하고, 신중한 수사는 사법 정의를 지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신중함과 지연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충분한 사실관계 확인과 법리 검토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절차가 지나치게 길어질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에게 돌아간다. 피해자는 피해 회복의 기회를 잃고, 피의자 역시 법적 불확실성 속에서 장기간 사건을 안고 살아야 한다. 사법절차의 적정한 속도 역시 정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이유다.

 

이번 사건은 그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숨진 여성은 편마비 장애를 앓는 남편과 중증 장애를 가진 큰아들, 건강상의 이유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작은아들을 돌보며 사실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 한 사람의 죽음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한 가정을 떠받치던 버팀목이 무너진 사건이었다. 남겨진 가족들은 생계와 간병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법원의 판단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처벌도 아니고 예외적인 대우도 아니다. 법이 정한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법원이 객관적인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재판은 유죄를 전제로 하는 절차가 아니라 사실관계와 책임을 법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절차가 제때 진행될 때 비로소 피해자도, 피의자도, 국민도 사법을 신뢰할 수 있다.

 

사고 경위를 둘러싼 양측의 주장도 엇갈린다. 사고는 중앙선이 없고 차도와 보도의 구분이 없는 생활도로에서 발생했다. 당시 진행 방향 오른쪽에는 봉고차와 승용차가 주차돼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A경감은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가 갑자기 도로로 뛰어나와 자전거 앞바퀴와 충돌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피의자신문에서는 "피해자의 몸이 자신의 왼쪽 어깨와 팔에 부딪쳤으며 붙잡으려 했지만 자전거를 타고 있어 잡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유족들은 CCTV 영상이 이러한 설명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피해자의 남편은 "피해자가 갑자기 뛰어나와 앞바퀴와 충돌했다는 것은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영상에는 충돌 직전 자전거에서 일어선 자세로 주행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그런 상태에서 피해자를 붙잡으려 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어느 쪽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수사기관이나 언론이 아니라 법원이 객관적인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은 재판이 시작되는 것이다. 재판이 열려야 증거가 공개되고, 당사자의 주장이 검증되며, 법적 책임도 비로소 가려질 수 있다.

 

유족들은 사고 직후부터 피의자 측과 여러 차례 합의를 논의했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고 말한다. 병원비와 장례비, 향후 생계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 규모를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협의는 이어지지 않았고,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가 나온 뒤에는 형사합의금 명목으로 1000만~2000만원 수준이 제안됐으나 피해 회복의 정도를 고려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의 남편은 "원하는 것은 거액의 합의금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 있는 대화"라며 "변호사를 통해서만 대응하는 과정에서 유족들은 또 한 번 상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형사재판이 시작돼야 책임 소재도 법적으로 가려지고 민사상 손해배상 절차도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만 길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반면 A경감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직후 가장 먼저 119에 신고해 피해자의 구조를 요청했고 지난해 세 차례, 올해 두 차례 유족들과 합의를 시도했지만 보상 범위에 대한 견해 차이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도 원만한 합의를 위해 노력하겠으며 형사처벌 여부는 검찰과 법원의 판단을 성실히 따르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가해자로 입건된 사람이 현직 경찰 간부라는 점 역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경찰은 누구보다 법을 집행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공직자다. 그렇기에 사건 처리 과정 또한 더욱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를 받는다. 이는 특정 직업군에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자는 뜻이 아니라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다.

 

결국 이번 사건의 본질은 누군가를 미리 단죄하는 데 있지 않다. 경찰의 판단도, 피의자의 주장도, 유족의 문제 제기도 모두 법정에서 객관적인 증거와 법리에 따라 검증돼야 한다. 다만 그 과정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시간 안에서 진행돼야 한다.

 

법은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공정함은 속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절차가 장기간 멈춰 있는 동안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삶이 무너지고, 피의자는 피의자대로 불확실성을 떠안는다. 결국 국민은 사법제도가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흔히 "정의는 늦더라도 반드시 실현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삶은 그렇게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생계에도 시간이 있고, 가족을 돌보는 일상에도 오늘이 있으며, 피해 회복에도 적기가 있다. 정의가 너무 늦게 도착하면 그 지연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다.

 

사법은 사건 기록만 다루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삶을 다루는 제도다. 법은 냉정해야 하지만 그 목적은 국민의 삶을 보호하는 데 있다. 이번 의령 로드자전거 사망사고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한 건의 교통사고를 넘어선다. 신중한 수사와 신속한 절차 사이에서 사법은 어떤 균형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특혜도 아니고 예단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법이 같은 기준으로, 그리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시기에 적용되는 것이다. 정의는 공정해야 한다. 그리고 정의는 제때 도착해야 한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품격이며,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길이고, 국민이 사법을 신뢰하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mailnews7114@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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